Grooming Essay
고전명작|안네의 일기 본문
안네의 일기, 왜 읽게 되었더라라고 곰곰히 생각해 보면, 세네 달 전부터 머릿속을 맴맴 돌았기 때문이다. 바로 안네의 일기 책 제목이 말이다.
또 왜 머릿속에 이 책 제목이 맴맴 돌았을까? 그건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읽고 싶어라는 그런 이상한 마음이 들었던 것.
도서관 가기가 너무 귀찮아 미루고 미루다가 며칠 전에 대여를 해왔다. 드디어. ㅋㅋㅋ
어릴 적에 이 책을 읽었을 땐 그냥 불쌍한 소녀 이야기, 참담한 전쟁과 악마 히틀러로 인해 죽임 당해야 했던, 고통 받아야 했던 유대인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더 읽고는 싶은데, 뭔가 새로운 무언가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열었는데, 처음엔 좀 그랬다. 꼬맹이 가벼운 연예 이야기가 나오길래. 꼬맹이의 러브스토리에는 1도 관심이 없었기에. ㅋㅋㅋㅋ(-.-)a
그러나 곧 은신처(뒷집)에 숨어 살면서 시작된 안네의 생각 흐름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전쟁같은 세상과 너무 닮아 있었다. 희망, 답답함, 절망, 사랑, 꿈, 끊임없는 자기 계발, 질투와 다툼, 불안,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사람간의 관계 등등 작은 은신처 안에서 안네가 관찰하고 느낀 자신의 생각과 감정들의 변화가 수를 놓듯 촘촘하게 그려져 있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마음 속을 개미인간이 되어 들어갔다 나온 거 같다. 아울러 그녀의 일기 속 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안네의 불행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불행을 극복하는 방식 중 하나가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보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달아라인데, 안네의 불행을 극복하는 방법은 남과의 비교가 아닌 하늘, 자연, 그리고 신 속에서 찾고자 하는 자세이다.
하지만 글 속을 잘 들여다 보면, 안네도 막 처음 은신처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바깥에 두고 온 자신의 또래친구였던 리지와 자신을 비교한다. 둘 다 모두 언제 나치들에게 붙잡혀 수용소 생활을 할지 모르지만, 안네는 숨을 곳도 없는 상황에서 아마도 수용소로 이미 끌려갔을지도 모르는 리지를 불쌍히 여기며 자신의 다행한 은신처 삶에 감사해하며 불행을 불행이 아니라고 받아들인다. 물론, 리지에 대한 미안함에 한편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안네의 모습을 동시에 엿볼 수도 있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은신처 생활이라도 할 수 있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안네는 점점 더 은신처 생활과 아버지의 권유로 읽기 시작한 성경을 통해 불행에 대한 자세와 생각이 서서히 변화하여 앞서 말한 자연과 신에서 행복을 찾고자 한다. 종교는 선택이고 자유일 수 있겠지만, 자연은 늘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거니깐. 아름다운 자연을 한 번씩 바라보며 삶의 무거운 무게를 덜어보면 어떨까 싶다.
이러한 '안네의 불행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문구를 아래에 발췌해서 적어두었는데, 특히 파란색 날짜로 표시된 부분을 참고하면 좋겠다.
안네는 비록 1944년 8월 4일 아침인 종전을 1년 정도 남은 시긴에 나치 친위대에게 끌려가 1945년 봄에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 그녀의 일기는 은신처 식구 8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녀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꿈은 작가 혹은 기자였다. 일기 속에서 자신이 정말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지, 기자가 될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그 꿈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안네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작가가 아닐까 싶다.
그녀에게서 여러 공감과 힐링을 받았는데, 그냥 읽고 치워버리기엔 너무도 아까운 몇몇 부분을 발췌해서 여기 블로그에 기록하고 간다.
1942년 11월 19일 (목)
.........
내 친구들이 이 추운 밤에 어디선가 독일군에게 얻어맞아 쓰러지고 개천가에 뒹굴고 있는 동안 나만이 따뜻한 침대에서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죄스럽기까지 해. 드디어 나의 친한 친구들까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짐승들의 손아귀로 넘어갔구나!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안네.
1942년 11월 20일 (금)
.........
우리의 '은신처'를 '우울한 은신처'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내가 어떤 처지에 있건 타인들의 불행만 염려하고 있어야 하겠어? 웃고 그럼 종일 울고 있어야 옳을까? 아니,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어.
이외에 또 우울한 일이 있어. 이것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뒤셀 씨에게서 들은 비극에 비하면 하잘것없는 거야. 그러나 나는 요즈음 갑자기 고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어. 주위가 너무 공허하고 황량해진 것 같아. 불행한 일 따위는 생각지 않고, 내 머릿속에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나 친구들의 일로 가득 차 있어서 이런 심정을 느껴보기는 처음이야.
.......
1942년 12월 13일 (일)
.........
어머나, 비가 오기 시작하는구나. 사람들이 모조리 우산 밑으로 숨어버렸어. 그 밑에 흔들리는 비옷과 가끔 누군가의 모자 뒤끝이 보일 뿐이야. 이젠 내려다봐도 별것이 없어.
차츰 지나가는 여자들이 누구인지 첫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됐어. 감자를 가득 이고 있고, 아니면 뒤꿈치가 닳아빠진 구두를 신고, 또는 가방을 들고 있는 여자. 그 여자들의 얼굴은 어두울 때도 있고, 명랑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아마 남편의 기분에 달린 거겠지.
안네.
1943년 3월 10일 (수)
...........
전등이 꺼진 어둠 속에서 떨고 있는 것보다는 촛불이라도 켜놓으면 한결 견디기 나을 것 같아 아빠에게 촛불을 켜달라고 졸라댔지만, 아빤 위험하다고 내 부탁을 들어주시지 않았어. 그래서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아빠 옆에 붙어 있었어. 그때 갑자기 기관총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어. 기관총 소리는 고사포 소리보다 더 살벌하고 무서워. 엄마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아빠의 만류를 뿌리치고 초에 불을 당겼어.
가느다란 불꽃이 어둠을 밀어내면서 초라한 방 안을 밝혀주었지.
...........
1943년 3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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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4월 1일 이내로 독일 점령 지역 안에서 말끔히 청소된다. 4월 1일부터 5월 1일까지는 위트레히트 지방을 청소하고(유대인은 마치 휴지 조각이기나 한 것처럼) 5월 1일부터 7월 1일까지는 전 네덜란드 지방을 청소한다."
...........
1943년 7월 11일 (일)
..........
어른들이 의논하고 있는 사이에 나는 슬그머니 벽장에서 잿빛 코트를 꺼내 입어보았다. 코트는 작아서 마치 동생 것을 빌려서 입은 것 같았어.
..............
1943년 7월 13일 (화)
.............
이 지독한 소릴들은 끝도 없이 계속되어서, 점점 말이 거칠어지고 알아듣지도 못할 만큼 빨라졌어. 중간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지만 '진정하자, 이 인간에게는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하고 마음을 가라앉혔어.
1943년 7월 19일 (월)
...........
그때 멀리서 들려오던, 언젠가 우리 머리 위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탁한 비행기의 폭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조여드는 듯한 기분이란다.
안네.
1943년 9월 29일 (수)
키티,
판 단 아주머니의 생일이란다.
우리는 병에 든 잼과 치즈, 고기, 빵의 배급권을 선물했지. 아저씨와 뒤셀 씨와 사무실 사람들은 먹을 것과 꽃을.
이런 서그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구나!
...............
1943년 11월 8일 (월) 저녁
............
미프는 이런 적막한 곳이 조용해서 부럽기까지 하다고 하는구나. 공포와 불안만 걷어버릴 수 있다면 사실이겠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다시 예전처럼 정상적인 평화가 찾아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물론 나는 '전쟁 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바벨 탑과 같은 것이겠지. 햇볕이 가득한 집과 정원과 친구들과 학교와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은시너의 여덟 명은 검은 비구름에 쫓기는 비둘기 떼와 같단다. 우리가 모여 있는, 뚜렷이 구분된 이 밀폐된 장소는 아직은 안전해. 그러나 우리를 향해 밀려오는 검은 구름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벽은 점점 얇아져가고 있어.
지금 우리는 빈틈없이 에워싼 위험과 암흑 속에서 안주할 구멍을 찾아 발버둥치고 있는 거야.
아래에서는 인간과 인간이 서로 싸우고 있고, 위에는 조용하고 푸르른 세계가 펼쳐져 있지만 우리는 감히 뛰어오를 수 없는 위만 쳐다보면서 캄캄한 암흑 속에 갇혀 있어.
나는 울면서 이렇게 신에게 호소한다.
"아, 우리를 희롱하는 저 검은 구름을 거두시고,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소서."
안네.
1943년 11월 11일 (목)
.............
지금 나는 열네 살인데 만년필은 나와 함께 이 수난의 세월을 증언하고 있어.
......
나는 섭섭하지만 위안이 되기도 했단다. 내 만년필은 내가 죽을 때 바라는 것과 같이 화장된 거니까.
1943년 12월 24일 (금)
...........
문득, 누군가가 코트 안에 찬 바람을 가득 안고 들어오면 '바깥 세계의 신선한 공기'에 대한 향수를 지울 수 없단다. 그러면 담요를 뒤집어쓰고 잊어버리려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머리를 높이 들고 용기를 내어야 한다고 자신을 타이르고 있어. 사실 너도 1년이나 그 이상 방 안에 갇혀 지내고 보면 나의 넋두리를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아무리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해도 자신의 감정을 속일 수는 없어. 자전거를 타고, 댄스를 하고, 휘파람을 불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젊은 날을 즐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만끽하는 것 ㅡ 이것이 내가 동경하는 거야. 그러나 이런 것을 말할 수는 없지. 우리 여덟 사람이 이런 것을 동경하고 불평에 찬 얼굴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니?
"유대인이든 아니든 나는 명랑한 분위기와 찬란한 햇빛이 필요한 한 소녀에 지나지 않아요" 하고 자신에게 항변할 때도 있어. 만일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나는 곧 울어버리고 말 거야. 사실 운다는 것은 때론 크나큰 구원이 되기도 해.
1943년 12월 29일 (수)
..............
우리가 옆에 있었지만, 할머니는 얼마나 쓸쓸하셨을까? 사람이란 아무리 여러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아도 고독할 때가 있는 법이야. 그 사람이 그 누구에게도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 못 되기 때문이야.
리스, 나는 언제나 네 입장에다 나 자신을 놓고 내 운명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한단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곳에서의 생활을 불행하게만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정말 그녀와, 시련을 겪고 있는 그녀의 친구에 대한 생각을 할 때 말고는 언제나 기뻐하며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왜 나는 언제나 무서운 꿈을 꾸거나 상상하거나 하는 걸까?
그러나 나는 무서워서 가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껴. ...........
1944년 1월 12일 (수)
.............
나는 야릇하게도 남의 눈을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볼 때가 있단다. 그럴 때면 나는 남의 일을 생각하듯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생애를 더듬어보곤 하지. ...
1944년 1월 28일 (금)
......누가 무슨 말을 꺼내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야. 어떤 농담을 해도 이야기하는 당사자만이 자기의 기지에 도취하여 웃을 뿐이야. 사실 이런 답답한 세계에서 신선하고 새로운 화제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
신분증을 위조하거나, 지하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금을 제공하거나, 적당한 은신처를 물색하거나, 은신처의 젊은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마련해주는 '자유 네덜란드'라는 종류의 단체는 많이 있어. 이들이 남을 구제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은 숭고한 거야. 우리의 원조자가 그 훌륭한 예야. 그들은 우리를 지금까지 보호해주었는데, 무사히 안전한 지대에까지 이끌어주기를 빌겠어. 그렇지 않으면, 그들도 현재 지명 수배되어 잇는 숱한 사람들과 같은 운명에 떨어지겠지.
우리가 그들의 생명에 관계되는 무거운 짐이 되어 있지만, 그들은 한마디의 불평도 없어. 그들은 매일 은신처로 올라와서, 남자들에게는 사업과 정치에 대한 뉴스를, 여자들에게는 식량과 전시의 어려움에 대한 해설을, 아이들에게는 신문과 책에 대한 얘기를 해준단다. 그들은 되도록이면 명랑한 얼굴을 하고, 우리 생일이나 국경일엔 꽃이나 선물을 가져오며, 우리를 힘껏 도와주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혹은 반나치 지하 운동으로 용감히 싸우고 있지만, 우리의 원조자는 그들의 명랑함과 애정을 무기로 영웅심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야.
...........
1944년 2월 12일 (토)
키티,
태양은 빛나고, 하늘은 짙푸르고, 상쾌한 봄바람이 산들산들 부는구나.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과 욕망이 은근히 가슴에 스며든다. 이야기하고 싶고, 자유와 친구가 그립고, 그리고 외롭게 지내고 싶기도 한...... 마음껏 울고 싶기도 하단다. 당장이라도 울음이 가슴속에서 터져나올 것 같고, 목놓아 울고 나면 후련해질 것만 같아.
왜 이리 마음이 설레는 걸까?
이 방으로 갔다 저 방으로 갔다 하며 거닐기도 하고, 방문 틈새에다 코를 대고 깊이 숨을 들이쉬기도 하고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어보기도 해. 심장의 고동은 나에게 "당신은 아무래도 내 이 허전함을 메워줄 수가 없나요?" 하고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했어. 봄은 정녕 내 몸 안에 잠자고 있는 것 같아. 그곳에서 봄이 싹트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온몸,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
나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태도를 취할 수가 없어. 텅 빈 듯이 허전하고 뒤죽박죽이 되어서 무엇을 읽고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어. 다만 나는 내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애타는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뿐이야.
안네.
1944년 2월 23일 (수)
.................
무서워하고 쓸쓸해하고, 불행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은 어느 곳이든 하늘과 자연과 신하고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그때 비로서 하나님이 자연의 소박한 아름다움 속에서 인간의 행복을 지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야. 자연이 존재하는 한ㅡ그것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지만ㅡ어떠한 환경 속에 있더라도 모든 슬픔에 대해선 언제나 위안이 따르게 마련이야.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어떤 미지의 사람과 함께 이 커다란 행복감을 나눌 수 있는 것도 그다지 먼 훗날의 일은 아닐는지도 모르지.
안네.
하나의 생각ㅡ
.............
밖을 내려다보고 자연과 신의 참뜻을 엿보았을 때 나는 행복을 지니고, 또 자연에 대한 기쁨이나 건강에 의한 즐거움을 가지고 있는 한 언제나 행복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재물은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의 행복은 비록 베일에 싸여 있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한 어느 때든지 다시 소생하는 것이다. 두려움 없이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꼬 마음이 순결하다고 자각하는한 행복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1944년 3월 1일 (수)
..........
엄마는 엘리에게 고난을 겪고 있는 다름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 그러나 자기가 불행할 때에 다른 사람의 불행을 생각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엄마는 "넌 이런 일에 간섭하지 마" 하고 꾸중하시더군.
1944년 3월 6일 (월)
............
나는 그도 역시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싶고, 그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접근하려고 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스릴에 찬 환희를 느낀단다.
그도 분명 나와 다름없이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겠지. 그러나 사실 내 마음을 끄는 것은 그의 그 조마조마하고 주춤거리는 태도라는 것을 그는 몰라.
1944년 3월 7일 (화)
............엄마와 나의 견해가 다른 점은 바로 이 점이야. 우울할 때면 엄마는, "세상의 모든 불행을 생각하고 자기가 아직 그런 불행 속에 던져지지 않았다는 것을 감사하라"고 충고하셔. 그러나 나는 달라.
"밖으로 나가서 들판을 걸으세요. 자연과 햇빛을 듬뿍 들이켜고 당신 자신과 하나님 가운데서 다시 행복을 찾으세요."
나는 엄마의 견해가 옳다고는 생각지 않아. 만약 그렇다면 자기가 불행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만 할 것 아니겠니? 그러면 그건 불행을 스스로 부르는 것이지. 반대로 자연이나 햇빛이나 자유나 인간 자신 속에는 항상 아름다움이 간직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믿는다면 인간은 자신과 신을 깨닫게 되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행복한 사람은 누구든 다른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법이야. 용기와 신념을 지닌 사람은 결코 불행 속에서 죽지 않아.
안네.
1943년 3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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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티. 정말 안네는 미쳐버린 소녀구나. 그러나 나는 지금 미쳐버린 시대에 미쳐버린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
........
1944년 3월 19일 (일)
...........
우리는 서로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했어. 나는 그의 신중함과 부모와의 관계를 이해하고 간절히 그를 도와주고 싶었어.
"안네는 항상 나를 도와주고 있어" 하고 그가 말했어.
"어떻게?" 하고 내가 놀라서 묻자,
"네 명랑한 성격으로."
이 말은 그가 들려준 말 중 가장 나를 즐겁게 했어. 그가 나를 친구로서 사랑하게 되었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니? 당분간은 그것만으로 충분해. 나는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에 넘쳐서 미처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어.
..............
1944년 3월 23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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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닐 때 나는 예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 어떤 남자 친구가 웃을 때 매력이 있다고 말해주었을 뿐이야. 그런데 어제 페터에게서 진정한 찬사를 들었어. 재미있으니까. 우리의 대화를 대강 소개할게.
페터는 곧잘 나에게 "안네, 한번 웃어봐" 하고 말해. 나는 이상해서,
"왜? 언제든지 웃어야만 하니?"
"네 웃는 모습이 퍽 마음에 들어. 웃을 땐 뺨에 보조개가 패여. 어떻게 만드는 거지?"
"선천적인 거야. 턱에도 보조개가 있어. 내 매력은 그거순이야."
"그렇지 않아."
"내가 미인이 아니란 건 나도 알고 있어.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난 네가 미인이라고 생각해."
"거짓말."
"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믿어도 좋아."
................
1944년 3월 27일 (월)
..............
모두가 지치는 기색도 없어. 마치 누구를 바늘로 꼭 찔러서 얼마나 펄쩍 뛰는가를 시험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질문 하나, 말 한마디, 대답 한마디마다 곧 트러블이 생기지.
.............
1944년 4월 1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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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유대인들은 자기 감정을 밖에 나타내서는 안 돼. 모든 부자유를 꾹 참고 불평을 말해서는 안 돼. 할 수 있는 일을 힘껏 하고나서 나머지는 신을 믿는 수밖에 없어. 이 무서운 전쟁은 어느 때든 끝나는 날이 있겠찌. 우리가 유대 사람일뿐 아니라 다시 일반 국민이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거야.
누가 이러한 괴로움을 우리에게 주었을까? 누가 우리 유대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게 했을까? 또 누가 오늘날까지 우리를 이러한 곤경 속에 빠뜨린 채 내버려두었을까?
...........
1944년 4월 19일 (수)
............
긴 겨울이 지나가고 아름다운 봄이 왔어. 4월은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이따금 가랑비가 내리는 멋진 계절이야. 뜰에 있는 밤나무는 벌써 파릇파릇 싹이 텄고, 여기저기 조그만 꽃도 피어 있어.
엘레가 일요일날, 고맙게도 수선화 세 다발과 나를 위해서 히아신스 한 다발을 가져다주었어. 나는 이제 대수 공부를 해야 해.
키티, 안녕.
안네.
'Bin's Essay > Road Trip in USA, 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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